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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記 :: 18년 사가

일본 사가 여행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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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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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여름, 군입대를 2주 앞두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대뽀로 사가 여행을 갔다. 사가를 목적지로 잡은 이유를 듣는다면 혹자는 당황스러워할 수도 있겠다. 인천 발 모든 항공권을 저렴한 순으로 검색했을때 사가가 가장 위에 있었다. 그래서 골랐다.

 

여행을 하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장에 끄적여놓았다. 그리고 볼로라는 여행기 플랫폼에 사진과 함께 나름의 여행기를 올렸다.

메모장 끄적임과 볼로 여행기를 얼기설기 엮고 이리저리 덛붙여 이렇게 보잘것없는 내 나름의 '사가 여행기'를 완성했다. 써놓고 보니 정말 볼품이 없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남은 일주일간 말 그대로 매일 술을 마셨다. 여행 뒤 허탈함을 잊기 위해, 그리고 입대에 대한 압박감을 잊기 위해 마셨다. 사가에 가서 회복한 윈기를 그 일주일 간 술잔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7월 3일 입대했다. 

  훈련소에선 정말 오만 생각이 다 든다. 힘들 때 가족과 친구들 생각에 더불어, 불과 한 달 전에 갔던 사가 여행을 생각했다. 사가에서의 추억이 훈련소의 절박한 상황을 견뎌내는 데 특히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때의 그 여유로움과 차분함을 생각하며 버텼다. 정말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루에 수십 번도 더 했다.

 

 

  2018년 4월 이후 남북관계가 급격히 호전되었고, 그에 따라 한일관계의 긍정적 미래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 가능하던 때였다.

  그리고 2019년 작년, 법원이 강제 징용자 피해자가 해당 기업에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허락한 판결을 내렸고, 일본은 일방적으로 우리 한국에 수출 규제를 걸었다. 그 이후 군대 안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끊임없이 악화되고 현재 진행형인 한일 관계뿐이었다.

 

 

  겪어보기 전까진 판단하지 않는 게 이성적인 것이겠지만, 글에 썼다시피 난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반일의 감정을 가득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으로 견고하던 반일 감정의 덩어리에 금이 갔다. 일본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쓰레기를 주워 들어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는 모습을 봤을 때 정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2년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다시는 사가 같은 여행은 하지 못할 것 같다.

  군입대 전의 그 허탈함과 무욕의 상태에 가까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여행할 기회가 올까? 그런 기회가 올지라도, 사가와 같은 완벽에 가까운 도시에 갈 수 있을까?

 

  산드린이 선물해준 찻잔 키트는 전역 후 한두 번 사용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그때의 그 감동을 곱씹는다.

 

 

  정말 즐거웠다,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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