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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그냥책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 가게 - 제임스 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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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강추로 제주도까지 들고 간 책이다. 신나게 노느라고 100쪽을 못 읽고 다시 가져왔지만 오늘 그냥 하루 만에 남은 부분을 다 읽어버렸다. 뭐 크게 재미있어서 하루 만에 읽은 건 아니고 그냥 읽기가 수월한 책이라 읽어 해치워버린 느낌이다.

 

  난 자기계발서는 절대 읽지 않는다. 내 삶과 그들의 삶 사이에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많을 확률이 크다. 그래서 읽을 때는 '와~ 대단하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싶다가도 책을 덮고 나면 다 잊는다. 다행히 이 책은 자기계발서와 에세이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이 책은 저자 도티가 명상수련을 통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세상을 바꾼다는, 물론 중간에 우여곡절도 겪으며, 그런 진부한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인 도티씨가 그냥 평범한 성공한 재력가였다면 이 책을 읽다가 덮었을 거다. 하지만 도티는 의사다. 중간중간 명상의 효과를 심리학과 신경의학적 측면에서 분석해놓은 부분들이 흥미로워서 계속해서 읽을 수 있었다. 난 눈에 보이고 과학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것들만 믿는다. 미신적인 것들은 믿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기보단 어쩌면 불가지론에 가까운 것 같다. 미신적인 것들의 진위여부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튼 도티가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명상에 접근해 읽기가 껄끄럽지 않았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 때도 있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딘가 무서우면서도 굉장히 흥미롭다. 코스믹 호러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존재한다면 분명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인류의 과학 수준이 그 정도인 것일 거다.

 

  도티는 결국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연민과 이타심이다라는 주제로 책을 마무리한다. 목표지향적이지만 독단적이었던(목표지향적인 것과 독단적인 것은 공존할 수 없을까?) 20대를 지나 40대가 되어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무언가 회의감을 겪는다. 닷컴버블붕괴로 나락까지 추락하며 돈과 명예만 좇아왔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며 어린 시절 자신의 영적 스승이었던 루스의 가르침을 다시 곱씹으며 초심을 되찾는다. 그리고 돌아보니 중요한 건 연민이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책의 주제인 연민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목표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20대 시절 도티가 대학교 면접을 보는 장면이다. 여러가지 상황들로 학점은 엉망이었지만 자신에겐 학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면접관들에게 역설하는 장면이다. 도티의 멋진 반골기질을 확인할 수 있다.

"누가 여러분에게 사람들의 꿈을 짓밟을 권리를 주었습니까? ... 저는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내내 이 꿈을 간직해 왔습니다. 그 꿈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제 삶에서 일관되게 지켜 온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항상 최고의 성적을 받진 못했습니다만, 제 모든 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남들만큼,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비록 제 학점이 그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굳게 약속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 위원회 앞에 섰던 학생들 중에서 기어이 의대에 들어가고자 저만큼 굳게 결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입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말 멋지기도 하다. 내가 면접관이라면 어땠을까...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이 사람을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 같다. 과연 내가 피면접자로서 이렇게 발언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도티만큼 간절히 꾸어왔던 꿈이 있기는 한가?

 

  도티의 20대 모습에서 지금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만 나도 주변 사람들이 나를 오만한 놈으로 보고 있진 않을까? 엄마는 항상 나에게 말한다. 나의 자신감이 누군가에겐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오만함과 자신감 그 한 끗 차이를 어떻게 조절해야할까? 

 

  책에 한두 번씩 감동 포인트도 있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기억에 남는 건 딱히 없다. 인상적인 책은 아니라는 거다. 나와 짙은 관계가 있거나 도티가 겪은 상황이 나의 상황과 많이 겹친다거나 내가 평소에 뇌과학이나 명상에 흥미가 있었다면(사실 뇌과학에는 흥미는 많이 있지만 아쉽게도 지식이 없다) 기억에 남는 게 많이 있었을 것 같다. 아쉽게도 이 책은 내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충분히 자극하지 못했다.

 

 

  왓챠피디아에서 몇 가지 한줄평을 가져왔다.

  동의한다. 초반 루스에게 명상을 배울 때는 꽤 흥미롭다. 갈수록 평범한 자기계발서의 향기가 짙어졌다.

  그리고 많은 여자들과 원나잇을 했다는 묘사가 있는데, 나도 읽으며 조금 띠용하긴 했다. '역시 자유의 나라 미국인 건가...' 굳이 이 부분을 넣었어야 했나 싶다. 돈과 명예, 여자를 모두 가졌음에도 채워지지 못하는 공허함이 있다는 그런 취지인 것 같긴 한데... 문화의 차이인 걸까? 미국에선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 걸까? 아무튼 도티가 세계 여러 나라 다양한 문화의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이것도 너무 공감이다. 결국 모든 자기계발서에 해당하는 한줄평이 아닐까.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있어 남긴다.

되돌아보면 삶에 찍힌 여러 점들을 연결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혼란과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도, 그 여러 점들이 함께 연결되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게 되리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 삶에서 이런저런 성공이나 이런저런 실패 그 어느 쪽도 결코 예측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나를 더 괜찮은 남편, 더 좋은 아빠, 더 좋은 의사,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라라 랜드>와 더불어 내 인생영화로 꼽는 <페인 앤 글로리>와 일맥상통하는 단락이다. 모든 것은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든 불행하게 하든, 그게 고통으로 가득 차 있든 희망으로 가득 차 있든, 결국 언젠가는 나 스스로에게 도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직 22년밖에 살지 않은 나는 이 명제를 확신할 수 없다. 그냥 믿고 살아가는 수밖에.

 

202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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