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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그냥책

포노 사피엔스 - 최재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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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라길래 기대하고 읽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라 그랬을까,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의 제목도 기대에 한몫했을 것이다. 뭔가 있는 책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기대치에는 한참... 한~~~~ 참 못 미쳐도 너무 못 미치는 책이었다.

 

왓챠의 좋아요 수 기준 2위와 3위 의 한줄평이다. 참으로 가혹한 코멘트가 아닐 수 없다.

 

너무나도 가혹한 한줄평이다

 

  왓챠 이용자의 상당수가 2,30대 등의 젊은 층이기에 왓챠의 별점이 이 책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젊은 층의 기호는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 '꼰대'들을 위한 책이라는 코맨트가 있는데, 선뜻 보면 부적절해 보일 수 있지만, 작은따옴표 안에 낱말을 집어넣어 그 의미를 압축해 전달하려 한 것 같다. '유튜브, 온디맨드 경제, 플랫폼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 대한 의미를 말이다.

 

  가혹하긴 하지만, 글을 읽고 나니 저 한줄평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안 든 부분은 기술을 마주하는 작가의 태도였다. 작가는 지극히 기술 만능주의의 입장을 견지한다.

 

  이는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이런 구절이 있다.

'200년 전 서구의 과학기술 문명을 거부했던 조선은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반면 기꺼이 받아들였던 일본은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죠. 역사가 주는 교훈은 명백합니다.'

  물론 틀린 말 하나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일본이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 다른 민족을 짓밟고 세운 식민지배와 피비린내 나는 군국주의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이런 부분도 있다. 20세기 한국의 제조산업으로 힘을 갖게 된 기성세대가 이루어낸 경제 발전에 대한 작가의 논평이다.

'이 놀라운 팩트가 우리나라에서만 정치 논리로 인해 저평가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 문장을 보면 과정은 중요치 않으며 결과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20세기 중후반 한국의 제조업 중심 성장의 이면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나? 현재의 대기업 중심 사회적 양극화는 모두 그때 형성된 것이다. 입만 아픈 논의다. 그런데 ‘정치로 저평가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부작용은 모두 덮어두겠다는 것밖엔 받아들일 수 없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그가 수반한 희생들을 포함해 말이다.

 

  자기논리부정도 찾을 수 있었다. 앞서 계속해서 기술의 장점은 자율성에 있다고 말했으면서, '선정적 방송, 욕설이 난무하는 방송, 무지막지하게 먹는 방송(먹방을 말하는 듯),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방송 등이 주류를 이루며, 개인방송은 정말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대다수였죠. 결코 정상적이지 않은 이런 컨텐츠들 때문에 청소년들이 병든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라고 써놨다. 물론 이는 타인의 의견을 인용한 것이다. 또한 이 문제점을 지적하며 문화 공간에 자정 능력이 있다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논리로 나아가는 것도 맞다. 하지만 글의 맥락과 말투로 미루어볼 때 이 부분은 명백히 필자의 주장을 드러낸다. 게임이 청소년을 병들게 한다는 말은 극도로 부정하면서 개인방송은 청소년을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식의 뉘앙스다.

 

  가장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다음과 같은 부분이었다.

'경제 이슈를 보면 대기업 및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권익 다툼만 한창입니다. 이런 이슈를 다른 나라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데 말이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충돌은 미중 간에도 사라진 이슈입니다.'

  무슨 이런 개소리가 있지 싶다. 대기업 및 자본가는 자본주의 진영이고, 노동자(노동조합을 말하는 듯)는 사회주의 진영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이분법적인 논리가 튀어나온 것인지, 과연 이 사람이 교수가 맞는 것인지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권익 다툼'이라는 표현을 보면 작가가 노와 사 양측이 비등한 권력을 가지고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실 그렇지 않아 보인다. 또한 해외의 노사 갈등에 관해서도 어떠한 근거도 없이 저렇게 서술해놨다. 작가가 그렇게 치켜세우는 ‘자유 시장의 대표’인 미국만 해도 당장 CNN labor-management conflict라고 검색해보면 해당 내용을 다루는 수두룩빽빽한 기사가 나온다. 프랑스에서도 파업인 La grève가 너무 자주 일어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어지는 내용이다.

'그동안 몇몇 기업들이 권력이 부당한 이득을 취했으니 이젠 권력의 힘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전히 중심은 정치이고 권력입니다. 그래서 화두가 되는 경제 정책을 보면 대기업의 계열사 매각, 중소기업과의 이익공유체, 최저임금 50퍼센트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한, 소득주도성장 등 온통 정치권력을 이용해 시장을 이념적으로 컨트롤하겠다는 이야기뿐입니다.'

  한마디로 무한 경쟁사회에서 정부의 규제는 오히려 독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념적으로 통제한다’? 위에 노동자를 ‘사회주의’로 칭한 것을 보고 나니 저자가 나열한 복지 정책들을 마치 ‘사회주의 이념’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들린다. 당혹스러운 논리이며, 시장 만능주의다. 

 

 

  그래도 책 초반부 세대와 기술을 접목시켜 설명하는 부분은 재미나게 읽었다. 하지만 위에 한줄평마따나 신문 기사를 스크랩 해온 것 같았다. 작가 개인의 통찰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만 구구절절 써놨다. 심지어 제대로 된 근거도 찾아보기 힘들고 하물며 통계 자료 데이터를 다루는데 출처에 대한 각주 하나 찾을 수 없다. 

   <총,균,쇠>도 800쪽에 걸쳐 같은 말만을 반복하지만 다양한 근거들과 다채롭고 통찰력 있는 새로운 주장들을 끊임없이 나열해 그것들을 곱씹는 재미가 있는 반면, 이 책은 같은 이야기를 별다른 근거도 통찰도 논리도 없이 계속 반복해 읽는 이로 하여금 피로하게 만든다.

 

한줄평

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라곤 전혀 없는 그냥 정보를 전달해주는 책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정보에 대한 출처 하나 없다. 카카오뱅크를 쓸 줄 알고 방탄소년단과 유튜브가 뭔지 알고 있다면 굳이 읽을 필요 없다. 이거 읽을 바에 <호모 데우스> 마지막 장을 한번 더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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