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8 - [역사] - 러시아 근현대사 (1)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러시아 제국의 정세
위 글에서 이어진다.
· 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
- 평범한 신부였던 '가퐁'이 20만여명의 노동자들을 이끌고 더 나은 삶을 요구하러 '얼음 궁전'(러시아 제국의 경복궁)으로 행진
- 차르의 전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 고조
- 입헌 군주제와 최저 임금 인상이 주된 요구 사항
→ 평화적인 시위였음에도 학살을 자행하고, 온건적이던 요구까지 묵살함
- 러시아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본격적으로 터지는 계기
·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열
-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해외 체류중이던 마르크스주의자들 대거 귀국
- 이후 의견 충돌로 두 지파로 분열
1) 마르크스주의자 집단 1 : 멘셰비키 ('소수파'라는 의미)
' 힘을 기르며 기다리자! 자본가들을 지원해 정지적 자유를 먼저 얻은 뒤 활동하자! '
2) 마르크스주의자 집단 2 : 볼셰비키 ('다수파'라는 의미) by 레닌 + 트로츠키
' 절대 no! 혁명 일으켜서 바로 정치권력 장악해야 됨! '
→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열로 제대로된 혁명 준비 늦어짐
But 이미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반란 일으키는 등 혁명의 불길은 시작되었음
※ 레닌과 트로츠키
- 레닌 : 볼셰비키 대빵, 하지만 조용하게 지하에서 탄탄한 조직 만들며 지상으로 자주 올라오지 않음
- 트로츠키 : 레닌을 대신해 사람들의 마음 휘어잡으며 지상에서 활동하는 스타성 인물
· 1905년, '1905년 러시아 혁명' 그리고 '10월 선언'
- 10월,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 전국적 총파업
-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백 명당 한 명꼴로 대표 선발해 소비에트(평의회) 결성
→ 나라가 돌아가지를 않자 니콜라이 2세의 '10월 선언' 발표
- 제정 철폐 및 입헌군주정 도입
-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사상의 자유 보장
But, 이는 성난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한 술수였을 뿐 애초부터 지킬 마음 없었음
→ 먹고 살 길이 없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서서히 그만두기 시작
→ 정부의 노동자 재탄압
→ 더 화가 난 시민들은 계속해서 반란 일으킴, 이 때 트로츠키가 주도
→ 황실의 강력한 대응으로 결국 실패로 끝
· 1906년~1911년 수상 스톨리핀의 통치
: 강력한 반동정치 (5년간 5,000여명 교수형, 수십만 시베리아 유형)
→ 1911년 암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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