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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영화

영화 <트로이>와 고대 지중해의 문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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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서양 미술사 관련 책을 읽고 있다. 양정무 교수님이 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라는 6권짜리 책인데, 굉장히 재미있다. 미술사라는 분야를 처음 접하기 때문인 것 같다. 뭐든지 처음 배우는 건 흥미롭고 재미있다. 자발적으로 배우는 것에 한해 말이다. 

  아무튼, 서양의 역사를 따라가며 그 시대별 예술을 살펴보는 내용인데, 2권에서 고대 그리스에 대한 설명 중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나와 넷플릭스에 찜해두었던 영화 <트로이>가 생각나 그날 밤 바로 봐버렸다. 

 

  누구나 어렸을 적 한번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집에도 전권이 모두 있어서 심심할 때마다 읽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관련 서적들을 읽을 때 그 지명과 인명 등 내용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트로이 전쟁'은 <일리아드> 혹은 <오디세이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조차도 한 번씩 들어본 단어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름의 인지도에 비해 그 내용에 관한 유명세는 그리 크지 않은 듯싶다.

 

 

작중 아킬레우스(혹은 아킬레스) 역의 빵형. 참고로 송강호보다도 4살이나 많다.

 

사실 이 '트로이 전쟁'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사실 여부와는 무관히, 그러한 신화가 나올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려 한다.

 

1. 오리엔트

  기원전 3500년 전후, 태초에 오리엔트 문명이 있었다. 여기서 '오리엔트 문명'이라 함은 '이집트 문명 +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컫는다. 이집트는 현재의 아프라카에, 메소포타미아는 현재의 아시아(중에서도 중동)다. 한참 뒤 문명의 중심이 크레타 섬그리스 반도를 통해 유럽 본토로 넘어가기 이전까지, 서방 세계의 중심은 다름 아닌 유럽과 아시아였다.

 

 

 

2. 크레타 

  수 세기 이후, 이들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명의 영향을 받아 크레타 섬에 문명이 싹튼다. 크레타 문명, 미노아 문명 혹은 미노스 문명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은 섬이라는 지리적 강점을 이용해 지중해의 해상 무역을 독점하는 등 독자적 문화를 형성해나가지만, 기원전 1500년경 화선 폭발로 멸망하고 만다. 하지만 이들의 문화는 고대 그리스 문화(미케네 문명)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

 

 

 

3. 미케네

  크레타 문명을 이어받아 그리스 본토에서 성장한 것이 미케네 문명이다. 몇 세기쯤의 차이는 있지만, 미케네크레타 문명은 성장의 길을 거의 동시에 걷는다. 크레타의 멸망 이후,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미케네와 대결하는 곳이 바로 이오니아(소아시아)의 도시 국가들이다. 이 이오니아의 도시 국가들 중 하나가 바로 '트로이'이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유럽의 '미케네'와 아시아의 '트로이' 사이의 전쟁인 것이다. 물론 아시아라고 해서 극동 지방의 우리 한국인이나 중국인과 같은 인종이 아니라 사실상 '유럽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 인종이었다.

 

용어 정리

- 오리엔트 문명 = 이집트 문명 + 메소포타미아 문명

- 크레타 문명 (a.k.a. 미노스 문명, 미노아 문명) : 크레타 섬의 문명, 화산 폭발로 멸망

- 미케네 문명 : 크레타 문명을 이어받은 그리스 본토의 문명. 이후 우리가 흔히 '고대 그리스' 하면 떠올리는 '헬라스 문명'으로 발전.

- 이오니아 : 현재 터키의 지중해 접경, 소아시아 지역.

- 트로이 : 이오니아 지역의 도시국가 중 하나.

- 참고 사항 ; 미케네 문명크레타 문명을 합쳐 "에게 문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4. 트로이 전쟁

  앞서 말했듯 정확한 사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상당 부분 신화에 기초하였음을 밝힌다.

발단

 신화에 따르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미케네 문명의 도시국가중 하나)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자 당시 최고의 미녀 헬레네를 납치(혹은 사랑에 빠져 같이 도망)한다. 간단히 말해서, 트로이의 왕자가 그리스의 왕비를 납치한다. 이를 빌미로 미케네 연합이 트로이를 침략하는데, 이 전쟁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결과

  어쩌면 트로이 전쟁보다도 유명할지 모르는 트로이 목마 덕에 미케네가 트로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전쟁 발발 후 10년이 흘렀지만 끝없는 대치에 양측 모두 지쳐갈 때, 미케네의 명장이자 최고의 지략가인 오디세우스가 나무로 목마를 만들어 안에 정예 전사들을 넣고 방치한 뒤 우리는 퇴각한 척 하자는 꾀를 내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내용은 워낙에 유명하다.

  이 트로이 목마의 실존 여부도 명확하지 않은데, 그나마 그리스인들이 도자기에 새겨놓은 부조를 보고 추측해볼 수 있는 수준이다.

 

 

고대 그리스 도자기에 새겨진 트로이 목마

 

  아무튼 미케네 연합군은 이 트로이 목마를 필두로 트로이 성을 함락한 뒤 트로이 도시 전체를 파괴해버린다. 그렇게 트로이는 순식간에 멸망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트로이는, 비교적 최근인 19세기가 되어서야 발굴되어 신화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던 그 존재 여부가 사실로 판명이 난다.

실제 배경

1. 그리스 본토 내륙지역은 험한 산지였기 때문에, 그리스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부족들은 애초에 해로를 통해서만 외국과 접촉할 수 있었다. 

2. 당시는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오고 있었던 시대였다.

3. 아직은 도시국가(폴리스) 이전 단계인 부족 국가 형태였던 성장 중인 미케네 문명과 주도권을 유럽 대륙에 넘겨준 채 서서히 시들어가는 이오니아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4.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트로이 전쟁은 당시에 흔했던 '헬라스의 해적들과 소아시아 항구 도시 사이의 국지전' 중 하나였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 사실이 신화적으로 각색되어 지금의 영웅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5. 이들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전쟁했고 미케네의 승리로 끝나, 결과적으로 문명의 중심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온다는 흐름의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트로이 전쟁인 것이다.

 

 

  여담으로 당시 강국이었던 트로이를 물리친 미케네도 곧이어 쇠락의 길을 걷는데, 이는 유럽 본토에서 호전적 민족인 도리스인(혹은 도리아인)이 남하한 탓이다. 이후 약 두 세기의 암흑기를 거친 뒤 본격적으로 헬라스 문명이 개화한다. 영원한 강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아스라진다는 흔해 빠진 교훈을 다시금 마음속에 새긴다.

 

  또 여담으로, 영화 자체는 잘 만든 역사 액션물이다. 브래트 피트 너무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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