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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그냥영화

영화 <소리꾼>, 사라져가는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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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다. <소리꾼>이다. 엄마랑 둘이 가서 봤는데 코로나 때문인가 영화가 인기가 없어서인가 우리 둘만 덩그러니 보고 나왔다.

 

영화는 자체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플롯들을 여기저기서 가져와 붙여 얼기설기 엮어놓은 것 같은 초라한 짜임새를 보였지만,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판소리는 여타 권선징악 영화들과의 큰 차이점이었다. 영화 그 자체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제 사라져 가는 한국의 전통 문화인 판소리를 영화화했다는 점이었는데, 어디서 얼핏 보니 이십여 년 만에 나오는 판소리 영화라고 한다.

 

영조 10년의 이야기라고 하니, 양력으론 1734년 쯤이겠다. 그즈음으로 하여 판소리가 전국적으로 유행을 탔다는 것은 언젠가 국어시간 혹은 역사시간에 배운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청이 역으로 나오는 아역 배우가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감탄의 연속이었다.

청이가 작중 계속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다 싶어 찾아봤다.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이 가사, 분명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그런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우리 할머니가 가끔 흥얼거리시던 가락이었다. 할머니가 이제 아흔이시니 어렸을 적엔 농사 짓고 집안 일 하시면서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셨을 건데, 이런 생각을 하면 문득 10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내가 요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있는데 우연스럽게도 이 영화의 감독의 이름이 조정래로 소설가 조정래와 동명이인이었다. <태백산맥>이 1940년 후반에서 50년 초반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소리하는 문화가 남아있었는지 소작인들이 모여 신세 한탄하며 저들끼리 한 소리씩 한다던지 술집에서 기생들이 흥을 돋우려 심청가나 흥부가의 주요 대목들을 부른다던지 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런 전통들은 대체 언제 사라져버린걸까?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불려 온 판소리가 1950년에서 2020년 단 70년이란 비교적 짧은 기간만에 이렇게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생각해보면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한다. 먼저 일제의 강점 당시 민족말살정책을 통해 그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것이며 남북 분단으로 문화가 고립되었을 것이다. 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미신 타파 운동을 동반한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의 고유 농촌 문화는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쏟아져 들어오는 서양 문물들에 그 자리를 빼앗겨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빼앗겼다고 쓰니 마치 서양 문화는 악이고 우리 전통이 정의인 것 같은 어감이 든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체된 것일까.

 

 

[경향으로 보는 ‘그때’]1973년 2월 ‘마을풍속’ 쫓아낸 새마을운동

1973년 2월19일 경향신문에는 ‘새마을 훈풍에 쫓겨난 폐습(弊習) 300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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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한 민족의 얼을 담는다. 일제가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우리 문화를 탄압한 것과 초기 로마 제국이 유대 문화를 탄압한 것은 문화가 단순이 무형적인 것을 넘어 민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이미 다원화의 길을 가고 있는 국제화 시대에 '민족의 정신'이라는 것이 중요한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잡스러운 생각들을 다 제쳐두고서도 판소리와 같은 고유한 문화는 힘을 들여 보존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아이돌 문화가 지금의 판소리처럼 사라져갈 때, 그 사람들도 이런 아쉬움을 느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한테 엄마 어렸을 적에도 소리꾼이 있었냐 물었다. 엄마는 63년생이니 7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다. 엄마 왈 소리꾼은 없었고 이동네 저 동네를 떠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은 있었다고 한다. 당시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지금처럼 적지 않았기에 글을 모르는 아이들과 문맹인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팔러 다니는 이야기꾼이 남아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신기하게도 동화의 본고장인 독일에선 아직도 이야기꾼(혹은 스토리텔러)이라는 직업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로 보아 단순히 문맹률로만 따져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방물장수도 있었다고 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의 직업이 장돌뱅이인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동네엔 떡장수가 있다. 저녁 시간 상가 지역을 돌아다니며 "찹싸~~알~~ 떠억~~~~" 외친다. 10여 년 전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 그분을 본 엄마가 아직도 떡장수가 있다며 신기해한 기억이 난다.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4)찹쌀떡·메밀묵장수

‘목소리로 듣던 메밀묵 장수를/골목 어귀에서 만났네/커다란 함지박을 이고/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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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평소에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전통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 전통이 너무 쉽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안타까움을 느낀다. 안타깝다고 해서 그런 문화를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설 그런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소비를 하기도 쉽지가 않은 것이, 일단 재미가 없게 느껴지고 재미를 느낀다고 해도 그런 문화에 접근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 이 또한 스스로에 대한 구차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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