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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그냥영화

영화 <아홉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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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밖에 안하는 요즘 볼 영화가 없나 싶던 찰나 가족이 권유로 함께 관람하러 갔다.

 

아홉 분의 스님들이 90일간 천막에 들어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라 놀랐다. 일단 러닝타임이 72분으로 굉장히 짧아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편집이 아주 '유튜브적'으로 잘 되어있다. 애플의 광고를 떠올리게 하는 자막을 이용했는데, 굉장히 깔끔하고 인상깊었다. 불교 영화라는 일면 딱딱할 수 있는 주제를 효과적인 편집으로 잘 살린 것 같았다.

 

가족이 불교도라 어려서부터 절에 많이 다녔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용어나 행위등에 익숙해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스님들은 수행을 위해 동안거와 하안거를 한다. 독방에 들어가 수일동안 나오지 않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 참선 수행만을 하는 것을 '안거'라고 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동안거는 이 안거를 극한의 상황으로 끌어 올린 것으로, 규칙이 참으로 괴랄하다. 아홉 명의 스님들은 90일 동안 아래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1. 하루 참선 14시간 이상

2. 하루 밥 한 끼

3. 90일간 옷 한 벌

4. 세수 및 샤워 금지 / 양치만 허용

5. 삭발 및 면도 금지

6. 외부인 접촉 금지

7. 말 금지

더욱 재미난 것은 이 규약을 위반할 시 조계종의 호적에서 파진다. 더이상 중의 신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혹자는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라고 물을 수 있다. 대답은 영화 속에 들어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자연스레 깨달았다.

 

나는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고 살아본 적이 있을까? 아마 말을 배운 이후론 없을 것이다. 사람은 말로 소통하는데, 말을 하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더군다나 아홉 명이서 같이 살며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불화가 생기는 것은 말을 통해서다. 잘못 전달된 의도가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하고, 그 언짢음이 쌓여 갈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갈등의 상황을 없애기 위해 '묵언'하는 것은 영화를 보고 나니 너무나 자명해보인다.

 

하루 한끼만 먹는다. 심지어 열량이 높은 육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채식이다. 배가 고프면 사람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해 지는 것은 모두들 알 것이다. 묵언 수행이니 망정이지, 아무리 스님들이라고 해도 90일동안 하루 한 끼 먹으며 9명을 한 장소에 가두어놓으면 분명 싸움이 한번은 날 것 같다.

 

때는 겨울이다. 2019년 1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90일이다. 천막 속엔 난방 장치가 없다. 그냥 천막이다. 그래서 밤에는 기온이 영하 5도 이하로까지 내려간다. 물론 텐트와 침낭, 이불 등 최소한의 것들은 주어졌더라.

그렇다 해도, 난 그 추위를 견딜 수 있었을까? 심지어 스님들은 가만히 앉아 참선만 한다. 발에 동상이 걸리지 않은게 신기할 노릇이다. 얼마나 발이 시릴텐데도 거의 움직이지조차 않는다.

 

게다가 14시간동안 계속 앉아만 있는다고 생각해보라. 물론 50분 참선 이후 10분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12시간은 족히 된다. 엄청 졸릴 거다. 졸린데 발은 시리고 또 배는 고프고... 그렇게 90일을 수행한 것이다.

 

 

인간은 고행을 통해 더 빨리 깨닫는다. 고통 없이 깨달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 고통을 수반한 깨달음보단 느릴 거다. 스님들이야 무엇인가에 대한 높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영화를 보며 그냥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 배고플때 먹을 수 있는 것, 졸리울 때 잘 수 있는 것, 추우면 보일러를 틀 수 있는 것, 이 것들의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말이다. 90일간의 하안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나도 40여일간의 훈련소 생활을 하며 그러한 사소한, 평소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것들의 소중함을 뼈져리게 느꼈다. 눕고 싶어도 마음대로 누울 수 없고 반찬의 양이 적어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은 흰쌀밥 뿐이었다. 먹고 싶은게 얼마나 많았던지 종이 한장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2018년 7월의 더위는 또 어땠는지... 샤위 시간도 10분으로 정해지는데, 기적적인 것은 8개 남짓한 샤워기로 40명의 인원이 10분 안에 샤워를 마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수십년간 수행한 스님들이라도, 아무리 묵언인 상황이더라도 분명 상대방에게 짜증이 나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90일동안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데 어떻게 다 좋기만 하랴? 그래도 최대한 그 화를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으며 스스로 수행했을 것이다. 참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만,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은 도움이 될 지 모른다. 상대방의 저런 행동을 참지 못하는 것이 결국 내 참을성과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재미있는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스님들이 꼭 필요한 소통이나 서로 힘이 되어주는 말 등을 할 때 칠판과 보드마카를 이용한다. 어느 날 어떤 고된 수행 이후 스스로들을 자축하기 위해 하루는 밥 대신 다른 메뉴를 정한 뒤 쪽지를 통해 의사를 바깥 세상으로 전달한다. 이게 짜여진 극본이 있던 것인지 스님들이 칠판에 피자와 떡볶이 중 무엇을 먹을지 투표하는 장면이 정말 찡했다. 뭔가 수행의 완벽성은 깨질지라도, 스님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재미난 장면이었다. 결국 고구마 피자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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