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며 나에게 커리큘럼을 요구했다. 정확히는 내가 친구에게 영어 공부하라고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압박했고 결국 친구는 굴복해 새해부터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나에게 커리큘럼을 짜달라고 한 것이다.
사실 나도 수능공부 말고는 영어 공부를 맘먹고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방식을 친구의 영어 공부에 적용시켜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친구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다. 친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영어엔 검증된 방법이 아니고(내 프랑스어 학습에 있어선 나름 스스로 검증했지만) 나 또한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일단 밀어붙였다. 언어 공부에 있어서 꾸준함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친구에게도 일단 일 년만 그렇게 꾸준히 해보라고 당부했다.
친구는 듣기에 취약하다. 수능 영어에서도 항상 듣기가 아킬레스건이었다.
나도 프랑스어 듣기에 취약하다. 난 쉐도잉을 하면서 듣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다.
따라서 친구도 쉐도잉을 한다면 듣기 실력이 효과적으로 늘 것이다.
이 빈약한 연역적 추론을 토대로 친구에게도 쉐도잉을 시켜보기로 결정했다.
먼저 사용할 '매체'를 선정해야 했다. 가장 만만한 팟캐스트로 골랐다.
다음으로 친구의 영어 실력은 그리 출중한 편이 못됨으로, 스크립트가 있는 팟캐스트를 취사선택했다.
친구에게 몇몇 방송을 들어보라고 한 뒤 절반가량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가 가장 효과적이니 골라보라고 했다.
그렇게해서 선택한 사이트가 이 사이트다.
대부분의 방송 길이가 10분 미만이라 부담스럽지 않고 주제도 정말 다양해 친구가 취향껏 고르면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흥미를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프랑스어 쉐도잉을 할 때 내 관심사인 영화 분야 쪽 영상을 보고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방송에 스크립트가 있다.
이제부터 학습 루틴이다. 사실상 내 프랑스어 쉐도잉 방식과 동일하다.
< 하루 사이클 >
앙키
그냥 하루중에 수시로 해야 함. 일어나서, 똥쌀때, 밥 먹기 전 5분, 밥 먹은 뒤 5분, 자기 전 이런 식으로 그냥 수시로 할 것. 문장을 반복해 말해봄으로써 그 문장 안에 있는 표현, 단어들을 내면화시키는 과정이다.
복습
1. 어제 학습한 부분 스크립트 안보고 듣기
2. 어제 학습한 부분 스크립트 안보고 따라하기
: 쉐도잉으로 하든 문장단위로 끊어서 듣든 편한 대로.
본 학습
3. 오늘 학습할 부분 스크립트 안 보고 들어보기
: 약 5분 분량 - 이건 스스로 공부해보면서 시간 정해라. 문장 몇 개만 해도 분석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려서 5분 분량도 못하긴 할 거다.
4. 스크립트 소리내서 읽기
5. 스크립트 안 보고 다시 쭉 들어보기 - 그럼 처음보다 더 들릴 거다.
6. 한 문장씩 끊어서 듣고 그 문장 분석
: 이건 전적으로 스스로 해야 된다. 문장 안에 모르는 단어, 숙어, 생소한 표현 등 검색해서 그 뜻을 스스로 이해하고 외우고 문장이랑 표현이 입에 붙을 때까지 몇 번 계속 말해봐야 한다. 하루에 한 30분 ~1시간 정도 투자. 스스로 해보면서 시간 조절을 해라. 지루하긴 한데 검색하면서 하면 시간은 잘 간다. 또 누군가 알려주는 걸 듣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보는 것이기에 기억에도 오래 남고 뿌듯함도 훨씬 더 크다.
7. 앙키에 문장을 등록
: 어려운 문장 or 중요한 것 같은 문장 or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외우면 좋을 것 같은 문장, 암튼 뭐든지 간에 문장들을 앙키에 죄다 등록.
복습
8. 그날 학습한 분량 다시 다 쭉 들어보고 안 들리면 다시 그 문장으로 돌아가서 듣고 읽고 반복.
학습 시간
방학 땐 1시간 반 정도를, 학기 중엔 10~20분 정도를 투자하라고 했다.
성패 여부는 두 가지로 판단하려 한다.
1. 친구가 이 방법에 흥미를 느끼고 꾸준히 공부하느냐.
: 사실 이건 친구 개인의 의지에 더 크게 달리긴 했다. 그럼에도 방식 자체의 재미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2. 실제로 듣기 실력이 좋아지느냐.
: 일단 여름방학때까지 꾸준히 시킨 뒤 7~8월쯔음 해서 전과 비교했을 때 나아진 것 같냐고 물어볼 생각이다. 이 것도 친구 의지에 달리긴 했다.
만약 효과가 있다면 이 방식을 조금씩 발전시켜 나중에 과외할 때 이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입시 영어 말고 정말 도움이 되는 영어를 배우길 원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누군가의 학습 커리큘럼을 짜주는 건 처음이다.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벌써 뿌듯하다. 1월 1일부터 이 방법으로 공부를 시켰으니(사실 방법만 알려주고 공부는 스스로 한거긴 하지만) 이제 오늘부로 딱 일주일이 흘렀다. 친구는 생각보다 더 만족했고, 내 기대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 한다. 학기중이 분수령이다. 방학때야 '할 게 없으니 공부라도 하자' 느낌이지만 학기중엔 다를 것이다. 친구가 꾸준히 흥비를 느끼고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할까? 이 장기간 실험의 결과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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