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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記 :: 18년 사가

사가 여행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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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가 여행 여섯째 날 -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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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0일 ~ 26일

6박 7일간의 일본 사가 여행기


 

2018년 6월 26일


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벌써 사가에 온 지 일주일이다.

첫 날도 꼭 이렇게 비가 왔었지.

 

여행 전 일기예보는

매일 비가 올거라고 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가는 날과 오는 날,

딱 이틀만 비가 왔다.

 

사가의 처음과 끝

어제 술자리를 함께 한 아주머니께서

너무 즐거웠다고,

밥이라도 한끼 사줘야 하는데

아쉬워서 어쩌냐고,

요 앞에 편의점이라도 가서

도시락이라도 사주겠다고 하신다.

 

귀국 편 비행기는

오후 5시 어간이라

아직 여유가 있다.

 

편의점으로 향해

각자 도시락을 하나씩 고르는 우리 셋.

도시락만 몇 번째인지.

하지만 절대 질리지 않는다.

일단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가격 대비 퀄리티도 뛰어나다.

 

행복한 아침 식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말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루 이틀쯤은

같이 돌아다녔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참고로 하가쿠레 바로 옆에

편의점 로손이 있다.

물론 아르바이트생이겠지만

직원 모두가 말도 안 되게 친절하다.

아니, 애초에 일본에 와서

불친절한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후쿠오카에서 몇 번 있었나?

 

 

하가쿠레로 돌아와

여유롭게 씻고 짐도 싼다.

고작 6박 하는데,

심지어 여름인데,

무신 놈의 짐을 이리도 많이 챙겼는지.

어제 산 선물들은

옷가지들로 꼼꼼히 싸

가방 깊숙한 곳으로 넣는다.

 

감성충이 되어 남긴 글

나도 칠판에 내 이름 석자를 남길까 생각했지만

방명록으로 대체하기로 마음먹고 펜을 든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일본어와 프랑스어도 적어 넣는다.

레이와 산드린이 읽고

웃음 지었음 좋겠다.

 

일본어는 글을 쓴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으로

한 자 한 자 베낀다.

어렵다.


1시쯤 슬슬 떠날 채비를 한다.

한국 분들과 다른 투숙객들은

이미 모두 나가고 없다.

 

산드린이 나에게

차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차? 좋지.

평소에도 차를 자주 마신다.

 

자기가 선물 받은 차 세트를 보여준다.

찻주전자 하나와 잔 두 개,

그리고 찻잎도 있다.

선물 받은 건데 안 쓰고 모셔놓기엔

너무 아깝기도, 미안하기도 해

차라리 나에게 주겠단다.

감동이 밀려온다.

이 정도로 따뜻한 사람이었나.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만

그래도 정성이니 받아 든다.

너무 고마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도 줄 게 없을까 계속해서 고민하다가

내 팔찌를 주기로 마음먹는다.

별 의미는 없는 평범한 팔찌이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다녔으니

오랜 시간을 함께한 녀석이다.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산드린의 침대에 몰래 올려놓는다.


이제 진짜 떠날 시간이다.

산드린과 레이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역으로 향한다.

꼭 다시 오기로 레이와 약속했다.

산드린은 조만간 프랑스로 돌아가니,

프랑스로 여행 갈 미래를 기약했다.

 

며칠 됐다고 정이 많이 들었다.

집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아침을 먹은 로손이 눈에 띄어

점심도 로손에서 때우기로 결정.

알바생도 아는 체를 해준다.

 

그리고 또 면

 

다시 만날 인연들에 대한 기대.

여행의 마지막이 아쉬운 동시에 아름다운 이유이다.

 

사가, 안녕.


비행기 안에서.

 

 

다짜고짜, 정말 말 그대로 다짜고짜 온 사가였다.

한 도시에서 6박 7일이란 시간이 너무 길진 않을까 걱정도 했었고,

혼자 올지 누군가와 같이 올지 갈등도 했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번 여행은 정말 대성공이다.

 

사실 애초에 여행의 목적을 정하고 오지 않았다.

와서 까보니 휴식이었을 뿐이다.

목적 없이 온 여행에서, 와보니 목적이 생겼다.

그러니 실패할 수가 없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정말 잘 쉬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매일같이 술만 마셨을 것이다.

아, 물론 여기에서도 매일 마시긴 했다.

다만 편하게, 정말 편하게 마셨다.

첫째로 적당히 마셨고 둘째로 침대 가까이서 마셨다.

군대 가기 전이라고 많이들 불렀을 것이 뻔했던 일주일,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다 했다.

돌아가기 싫다. 돌아가면 날 기다리는 건 술잔들과 입대에 대한 압박감뿐일 것이다.

 

사가라는 도시가 참 좋다.

흔히들 가는 오사카나 도쿄 교토 등 주요 관광도시에 갔다면 내 일본에 대한 첫인상은 지금과는 크게 다르게 형성되었을 것이다.

조용하다.

사람도, 차도 많지 않다.

그저 숙소에 앉아있으면 간간이 들려오는 기차 소리에 귀가 간지러울 뿐이다.

조용하다고 해서 시골인 것은 또 아니다.

나름 규슈 교통의 중심지란다.

덕분에 충분 친 않더라도, 관광객에게 필요한 것들 있을 건 다 있다.

정말 모순적이다. 모순의 도시가 바로 사가이다.

정말 아름답다.

특히나 연꽃밭을 봤을 때 정말이지 사가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연꽃들, 아직 봉우리채인 꽃들이 대다수였지만 날 감동시키기엔 충분했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가 왜 아직까지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뭐 난 좋다.

 

하가쿠레 숙소도 사가의 매력에 큰 기여를 했다.

최대 숙박 인원 13명의 작은 게스트 하우스.

아담하고 아기자기하다.

디자인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직원들도 좋다.

레이와 산.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센스 있는 레이.

첫 만남부터 한국 컵라면 먹는다고 자랑했던 수다쟁이 산.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는 이 둘이 정말 좋다.

무엇보다, 1층에 있는 바.

이 바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만족도가 높진 않았을 것이다.

여행 가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

뽈뽈 돌아다니며 나 자신을 학대(?)했던 그런 여행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많은 여행을 해보면서 항상 느끼는 점, 꼭 무엇인가를 '해야만' 좋은 여행이 아니라는 것.

이번 사가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사가 여행, 진짜 끝.

 

 

 

일본 사가 여행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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