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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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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늦게까지 개표 방송을 보며 가슴을 졸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총선이 끝난 지 일주일이다. 이번 선거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첫째로 첫 총선 투표였고, 둘째로 정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뒤 치른 첫 선거였다. 막 스무살이던 2017년 지방선거 당시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선거에 임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고, 같은 해 말 대선엔 '홍준표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는 맹목적이고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는 결의를 가지고 투표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진보 성향인 가족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그땐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엔 이전 두 경우와는 달리 정말 주체적인 자세로 투표에 임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두 분께선 이후 계속해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정치에 관심이 많다. 초등학생때 당시 오세훈 서울 시장이 어떤 사람인지 무상급식을 하면 무엇이 좋은지는 몰랐지만 '오세훈'이란 단어와 '무상급식'이란 단어에는 익숙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지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고, 2012년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을 때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린 난 그저 부모님의 감정에 동조했다. 난 그런 가정에서 자라났고, 자연스레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나에게 '민주당'이나 '진보 세력'은 절대적 '선'이었고,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은 절대적 '악'이었다(부모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진 않았다. 단지 어린 내가 정치라는 복잡한 생물을 그렇게 단순화시켜 받아들였을 것 같다). 이 이분법적 사고관이 깨진 것은 불과 한두해 전이다. 가족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 성향을 띄게 된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길들여진 성향 위에 나의 두터운 주관을 쌓아가고 있다. 

 

  고등학생때쯤부터 부모님이 보였던 반응의 이유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가끔 뉴스나 신문을 보며 정치에 익숙해져 갔다. 인문학 책도 가끔 읽었다.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주변에 정치적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공부해야 하는 학생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어디 있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도 정치를 알아야 한다. 어려서부터 사회 현상들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그러한 학생들이 모여 건전한 사회(추상적이지만)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생각을 쉬이 용납하지 못하는 정치 풍토나 사회 분위기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시 돌아와서, 터놓고 편히 대화할 상대가 없었기에 그냥 혼자 생각하고 궁금해하고 끝날 작은 관심에 지나치고 말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대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했고, 나와 동갑이던 수백명의 아이들이 공포에 질린 채 죽어갔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와는 별개로 세월호 참사가 '수학여행'을 가는 도중에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육부는 수학여행 자체를 금지시켰다. 사고의 원인을 '수학여행'에서 찾으려 한 것이 아닐까. 물론 재난 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마련하는 시간의 필요 등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 이제 막 친해진 친구들과 재미난 수학여행을 꿈꾸던 우리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정부의 당혹스러운 대응과는 무관하게, '세월호'라는 단어 자체가 정치적인 용어가 되어버린 것 같아 정말 서글프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2016년은 '박근혜'라는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있을 만큼 떠들썩한 한 해였다. 공부를 하느라 바빴지만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는 있었고 대충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지 주변 친구들에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는지 시민이 모여 촛불로 탄핵을 이루어냈다. 감동적이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이후 대학 1학년을 거치며 놀기에 너무 바쁜 나머지 뉴스를 멀리했다.

 

  그리고 정치 사회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건 대선 직후인 2018년 초부터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 휴학을 해 남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틈틈이 신문을 읽고 뉴스를 봤다. 2월 평창 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관계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3월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사건이 터졌다. 이어 4월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탔다. 그때는 이러다가 정말 통일되나 싶었다. 그 여세를 몰아 613지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7월 입대 후 '드루킹 사건' 수사 과정에서 故 노회찬 전 의원이 투신자살했는 소식을 신병 훈련 중 들었다.

  이 땐 이러한 정치적 사건들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언뜻 나와는 무관해 보이는 '정치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이면의 정치적 의미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무엇이 좋아서 뉴스에서 그리 떠들어 대는지, 통일이 되면 나에게 무엇이 이득인지,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정치 거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게 정치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사건들 자체에만 흥미를 느꼈다.

 

  군생활의 절반이 지나고 심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다시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2019년 하반기 당시 뜨거운 감자는 한일 무역 분쟁과 홍콩 시위 등이 있었지만, 단연코 '조국 사태'가 그 중 으뜸일 것이다. 이는 실로 한국 교육계의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낸 사건인데, 학창 시절 공부하며 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체감한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가 재조명되었듯이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무언가 사건이 터졌을 때에야 병폐를 직시하고 그제야 해결하려 노력한다. '조국 사태'의 스케일은 점점 커져 울산시장 청와대 선거개입/하명수사 논란에까지 이르렀다. 그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지만 곧이어 큰 논란만을 남긴 채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조국 전 장관을 필두로 진행되던 검찰 개혁이 그 추진력을 잃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동시에 그렇게 논란이 많았음에도 그렇게까지 조국이란 사람을 밀어붙인 문재인 정부에게도 회의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는 있었다. 윤석열 총장을 필두로 한 검찰과 조국을 필두로 한 정부의 기싸움이 특히나 재미있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뉴스에서 워낙 조국만 떠들어 대니 지겨울 수 있었겠지만, 나는 조국 사태에 대한 다음 기사가 기다려졌다. 조국 일가를 수사하는 검찰에게 정부는 너무 심하게 압수수색 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판을 쏟아냈다. 그 와중에 조국 측에서 검찰 개혁안을 제시했는데, 이는 '수사를 받는 대상'이 '수사에 대한 개혁안'을 제시한 꼴이다. 이보다 더한 희극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대결 구도였다. 뉴스 보는 시간에 생활관 동기들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다들 흥미로워했다. 여담으로, 지금 생각해보니 그 와중에 대림동 여경 사건 등 남녀 분쟁을 유발하고 사회의 병폐를 들어내는 크고 작은 사건들도 끊임없이 발생했던 것 같다. 2019년은 버닝썬으로 시작해 조국으로 마무리된 혼란 그 차제였던 한 해였다.

  

  '조국 사태'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연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말로만 들었던 부패하고 비대한 검찰 세력의 온상을 낱낱이 깨달았으며 무엇보다도 성인이 된 뒤 서서히 금이 가고 있던 정치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관이 완전히, 단 한순간에 깨졌다. '민주당'은 절대적 선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모두 자신의 세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일 뿐이었다. 정치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이해관계에 따른 끊임없는 대치만이 있을 뿐이었다. 조국 전 장관은 이미 저 멀리 나락으로 추락했고 청와대가 울산 시장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계속해서 들어났으며 국민들도 청와대에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 민심은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며 다시 문재인 정부의 편에 선다. 조국 사태를 거치며 정치 사회적 상황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나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무튼간에 '그렇게까지 해서' 검찰 개혁을 완성하고 싶었던 문재인 정부는 조국 전 장관의 후임자로 추미애 장관을 임명했다. 정말 큰 재미는 그때 시작되었단 걸 난 아직 몰랐다. 추미애 장관은 검찰을 상대로 강경책을 펼쳤다. 여전히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생각이 들었다.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공소장 사건'이다. 청와대와 조국을 상대로 한 검찰의 수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때 법무부에서 갑자기 사건 공소장을 공개하던 관행을 멈추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좌우를 막론하고 거센 비판이 일었다. 법무부에서 옳은 결정을 한 것인지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진 않겠으나, 총선이 2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정당의 표를 깎아먹는 논란을 왜 자꾸 일으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2편에서 계속.


2009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무상급식

2012년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

2018년 

 - 안희정 전 지사 성폭행 사건

 - 남북 정상 회담과 남북 관계

 - 613 지방선거와 민주당의 압승

 - 故 노회찬 전 의원이 투신자살

2019년

 - 승리와 버닝썬 게이트

 - 한일 무역 분쟁

 - 홍콩 민주화 시위

 - 조국 사태

 - 패스트트랙과 공수처

2020년

 - 추미애-윤석열 갈등

 - 코로나 사태

 - 415 총선거

 

내가 기억하는 굵직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짧게나마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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